한국 최초의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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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지피티에게 “한국 최초의 만화“가 무엇인지 질문하면 다음과 같은 답이 나옵니다.

한국 최초의 만화는 조선시대에 그려진 “태조왕건전록“입니다. 이 작품은 1935년에 출판되었으며, 한국의 최초로 알려진 만화 작품 중 하나입니다. “태조왕건전록”은 조선시대의 역사적 이야기를 만화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한국 만화의 역사를 시작하는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정보를 참고하면, 한국의 만화는 일반적으로 1909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전의 기원으로는 한국 최초의 만화로 18세기에 그려진 “의열도“를 들기도 합니다. ‘만화(漫畵)’라는 단어는 1910년대 초에 이미 사용되고 있었으며, 잡지와 신문에 연재되면서 점차 대중화되고 그 형식이 갖추어졌습니다. 이미치 출처

 

 

한국 최초의 만화 발상지

수송동 51번지, 지금의 종로구청 동쪽 인근에 이색 조형물을 보면 조형물 하단에는 “한국 만화, 여기서 시작하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곳이 ‘한국 만화의 발상지’임을 한눈에 알게 해준다. 이 곳은 근대 한국 최초의 만화가 실린 ‘대한민보’가 있던 자리를 기념하는 곳입니다.

위치: 종로구 삼봉로 71번지의 옛 대한민보 자리(수진궁터)

 

‘대한민보’는 일제식민지가 되기 직전인 1909년 6월 2일에 창간되었으며. 암울한 시기 국권을 수호하고 친일단체인 일진회(一進會) 활동에 대항하기 위해 대한협회(사장 오세창)가 발행한 일간신문이다. 대한민보 창간호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가 탄생하였다. 당시는 지금처럼 ‘만화’라는 표현이 사용되기 전이라 만화를 ‘삽화’라고 불렀다.

수송동 한국만화 발상지 조형물에선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작가 이도영(1884~1933)의 첫 시사만화인 ‘삽화1’을 만날 수 있다. 한국 회화의 전통과 연결된 화풍에, 만화적 기호와 풍자적인 내용들이 잘 표현됐다.

“대국(大局)의 간형(肝衡) : 국내외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한혼(韓魂)의 단취(團聚) : 한민족 정신을 하나로 모으고
민성(民聲)의 기관(機關) : 민중의 소리를 대변하는 기관으로
보도(報道)의 이채(異彩) : 다양한 보도를 하겠음”

연미복 신사 그림과 함께 「대한민보」의 머리글자를 따서 4행시처럼 쓴 만평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삽화1’은 창간되는 대한민보의 정체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렇게 ‘삽화1’은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이자 최초의 시사만평이기도 하다.

국권피탈로 1910년 8월 31일 폐간될 때까지 1년 3개월 동안 ‘대한민보’는 조선의 무능한 지배층과 친일관료들에 대한 비판과 국민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국제 정세와 시사적인 사건에 대한 지속적인 논평을 하는 등 총 346점의 시사만평으로 삽화로 게재하였다.

“이 산으로 가며 복국(復國),
져 산으로 가며 복국(復國), 복국(復國) 복국(復國), 복복국(復復國)”

이도형의 삽화 ‘배우창곡도(俳優唱曲圖)’ 편에서 선보인 만평이다. 민요 새타령의 후렴구인 ‘뻐꾹’을 나라를 되찾자는 의미의 ‘복국(復國)’으로 바꾸었다. 삽화를 통해 일제의 침탈에 맞서서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렇게 당시의 삽화(만평)들은 일제강점기 시대상을 담아내고 국권을 되찾으려는 풍자적 내용이 뛰어났다.

종로구 수송동을 지난다면 한 번쯤 만화 발상지 상징 조형물을 보신다면, 현재 일상에서 즐기는 만화와 웹툰, 애니메이션의 뿌리가 된 곳일 뿐만 아니라 삽화로 표현된 당시 만화로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탄생한 기록물이다. 아무래도 우리가 즐기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일본을 통해 유명해졌지만 대한민국의 만화의 발생지도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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